꽃잎무침, 꽃국
link  부케나라   2021-04-15

원래 꽃이란 먹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눈과 코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꽃이다.
이것을 담당하던 궁궐 내 기관이 '내원서' '장원서' 였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혀과 꽃이 친해지기 시작한 역사도 만만치 않은 장구한 세월이었다.
따라서 특권계급인 왕족들은 그 누구보다도 꽃과 친한 혀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궁녀였고, 조선시대의 관청으로는 생과방과 소주방이었으며 궁녀들이 임금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던 곳이 바로 '수라간'이다.

수라간에서 올리는 임금의 식사 중에 꽃잎과 가장 친한 것은 낮것이라고 불리는 점심식사일 수밖에 없다.
임금은 보통 새벽에 일어나는데
이 때 탕약을 먹거나 죽을 기본으로 하는 죽상을 차린다.
그리고 아침수라는 요즘으로 치면 꽤 늦은 시간인 10시경, 그리고 저녁 수라는 오후 5-7시경에 받는다.
고려시대에는 두끼 식사가 귀족에게도 기본이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도 그 풍습은 이런 식으로 일부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침과 저녁식사는 거나하게 차려졌다.

그렇지만 왕이 낮을 그냥 보낸 것은 아니다.
다만 식사가 간소했다.
점심을 낮것이라고 했는데 누가 방문하지 않는 날의 낮것상은 과일이나, 과자, 떡, 화채 등의
다과반 차림이 많았다.
요즘으로 치면 간식이라고 불릴 만 한데, 이 때 올라오는 것이 과자나 떡을 제외하면 제철 과일이나 제철 꽃을
식용으로 만들어낸 화채였던 것이다.
궁궐의 요리사들이 전문요리사였음을 감안하면 고급 꽃음식은 궁궐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꽃잎 식용의 역사는 민간에서 더 많은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궁궐에는 음식 재료가 풍부했던 반면 민간에서는 그렇지 못했기에 일상적으로 음식의 재료로 보지
않았던 것에 눈길을 돌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궁화를 예로 들자면
중국의 지리서인 '산해경'에 최초로 무궁화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한국에는 많은 무궁화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물론 식용의 기록은 아니다.
하지만 한반도 건국 초기부터 전국을 수놓아 우리나라를 무궁화의 나라라고
(신라를 뜻하는 것으로 최치원이 당에 보낸 국서에 나온다) 부르게 한 그 꽃이 오래전부터 민간에서
식용으로 사용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려운 근거들이 많다.

예를 들어 산사에서 진리탐구에 맹진하던 스님들은 몸과 마음의 정화를 위해
무궁화 잎으로 된장국을 끓여 먹곤 한다.
민간에서는 잎으로 나물무침이나 국에 넣어 먹었다.
꽃잎으로 담근 술, 꽃잎으로 만든 차는 약용으로 쓰였다.
우리의 고정관념은 눈과 코의 꽃에 매달려 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꽃은 혓바닥과 몸을 위한
보양에도 널리 쓰였던 것이다.






뜻밖의 음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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